건강하고 행복한 성현교회
나이지리아 이재혁선교사님 편지
새벽 1시
눈이 떠졌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거실에 나와 핸드폰을 끄적거리다 책상에 앉았습니다. 어제 일이 아직 생생합니다.
복부를 열자 종괴 주위로 장들이 심하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조심조심 박리합니다. 하지만 가위가 톱 같습니다. 유착과 함께 발달된 혈관으로 피가 많이 납니다. 저절로 풀리는 집게(Forcep)로 지혈이 되지 않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실은 쉽게 끊어집니다. 조수로 들어온 레지던트는 어리숙합니다. 이빠진 가위로 하는 무딘 가위질. 간신히 묶은 실을 뜯고 더 큰 출혈을 만듭니다. 피를 닦아 내는 수건은 여분이 없습니다. 신참 스크럽 간호사가 흥건한 수건을 짜서 줍니다. 장 절단용 기구(Bowel clamp)가 없습니다. 다른 건물 수술실에 있다고만 합니다. 보다 못한 Dr. Y가 가지고 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잠시 후에 옆방에서 찾아왔습니다.
후회됩니다. 고생할 줄 알면서 왜 시작했을까? 부디 환자의 생명에는 지장 없기를 바랬습니다. 출혈 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뛰는 마음 가라앉히기를 여러 번. 천천히, 천천히 한걸음씩. 7시간이 지나 수술을 마쳤습니다. 종괴와 함께 우측 대장을 절제하고 간생검을 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집에 돌아왔습니다. 목도 팔도 허리도 아픕니다. 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저녁과 타이레놀을 먹고 이른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 4시
다시는 수술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낡아진 기구 외에는 바뀌지 않은 지난 10년. 늘어난 흰머리와 침침해진 눈이 말해주는 시간 동안 뭐했나 싶습니다. 분노하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선교사의 길 어딘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려 침대에 누웠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하얀 타일의 수술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기가 있었습니다. 물이 있었습니다. 소작기와 흡입기가 작동했습니다. Needle holder도 바늘을 잡았습니다. 에어컨 덕에 땀을 덜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좋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새벽 5시
'도구 문제로 환자의 안전을 위해 수술할 수 없다.' 라고 말하려 합니다.